this와 that이 눈앞에 없을 때 벌어지는 일

영어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이것은 this, 저것은 that"이라고 아주 명확하게 배웁니다. 손가락으로 가까운 곳을 가리키며 this, 먼 곳을 가리키며 that이라고 외우던 기억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막상 미드를 보거나 영어로 메일을 주고받다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눈앞에 가리킬 물건이 아무것도 없는데 원어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this와 that을 번갈아 쓰기 때문입니다.

this와 that

예를 들어, 친구가 한참 자기 고민을 이야기한 뒤에 "What do you think about that?"이라고 묻기도 하고, "This is a great idea!"라며 말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분명 공간적인 거리를 뜻하는 게 아닐 텐데, 원어민들은 대체 어떤 머릿속 계산을 거쳐 이 두 단어를 골라 쓰는 걸까요? 오늘 그 미묘한 느낌의 차이를 확실하게 짚어보겠습니다.


한국인이 유독 헷갈려하는 지시어의 함정

우리가 이 개념을 유독 어색해하는 이유는 우리말 '이것, 그것, 저것'의 쓰임새와 영어가 완벽하게 매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는 상대방이 방금 한 말을 받아칠 때 '그것'이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씁니다.

"나 어제 스마트폰 잃어버렸어."
"헉, 그거 어디서 잃어버렸는데?"

이 상황을 영어로 옮기라고 하면 십중팔구 '그것'에 대치되는 단어인 it이나, 혹은 무난해 보이는 that 중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원어민들의 대화 속에서는 단순한 대명사 it과 지시 대명사 this/that이 명확한 심리적 거리에 따라 작동합니다. 이 심리적 거리가 무엇인지 예문을 통해 몸으로 느껴봅시다.


심리적 거리감이 만들어내는 두 단어의 차이

영어에서 this와 that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내 마음속 공간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화 내용이나 아이디어를 다룰 때도 이 규칙은 소름 끼치도록 똑같이 적용됩니다.


1. 내 생각에 시동을 걸거나 가까이 끌어안을 때는 this

내가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 혹은 방금 내 입으로 뱉은 따끈따끈한 아이디어는 내 마음에 아주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이때는 주로 this를 씁니다.

  • Listen to this. You're gonna love it.
  • [직역] 이것을 들어봐. 너는 그것을 좋아할 거야.
  • [해석 흐름] (내가 지금부터 꺼낼 이야기가 내 쪽에 가까우니 this로 시선을 모으며) 야, 이 말 좀 들어봐. 너 진짜 좋아할 걸.

반대로 상대방이 멋진 의견을 냈을 때, "와,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이다!"라며 적극적으로 내 마음에 쏙 가져와 동조하고 싶을 때도 의도적으로 this를 쓸 수 있습니다.

  • Now, this is what I call a real vacation.
  • [자연스러운 해석] 크, 바로 이래야 진짜 휴가라고 할 수 있지.
  • [영어식 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내 마음에 너무나 가깝고 만족스럽기 때문에 that 대신 this를 선택하여 감정을 가깝게 밀착시키는 느낌입니다.

2. 상대방의 영역으로 선을 긋거나 한 걸음 물러설 때는 that

반면 that은 내 영역이 아닌 '상대방의 영역'에 있는 대화 내용을 가리킬 때 주로 씁니다. 혹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이라 내 마음에서 멀어졌을 때도 that의 몫입니다.

  • A: I think we should postpone the meeting. (우리 회의를 연기해야 할 것 같아.)
  • B: That sounds like a good plan. (그거 좋은 계획처럼 들리네.)

여기서 B가 That을 쓴 이유는 회의를 연기하자는 아이디어가 자신이 아닌 '상대방(A)'의 입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영역 밖의 이야기이므로 심리적 거리를 두어 that으로 받아주는 것이 원어민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자주 하는 오역 중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친구가 슬픈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우리는 흔히 "I'm sorry to hear this."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미 상대방이 한 말은 내 통제 권한을 떠난 상대방의 이야기이므로, 원어민들은 대개 "I'm sorry to hear that."이라고 표현합니다. 소소해 보이지만 이런 한 끝 차이가 원어민스러운 뉘앙스를 만듭니다.


한눈에 비교하는 지시 대명사 vs 인칭 대명사

여기서 많은 학습자들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그냥 it을 쓰면 안 되나요?"
간단하게 표로 정리해 드릴 테니, 머릿속에 이 느낌을 각인시켜 보세요.

단어 원어민이 느끼는 심리적 위치 실전 활용의 느낌
This 내 품 안, 내 영역, 지금부터 할 말 새로운 화제를 던지거나 적극적으로 공감할 때
That 상대방의 영역, 이미 지나간 대화 네가 방금 한 말을 받아치거나 거리를 둘 때
It 앞서 언급되어 이미 모두가 아는 그것 감정이나 가리키는 힘 없이 담백하게 사실만 전달

it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힘(지시력)이 아예 없습니다. 그냥 앞에서 나온 명사를 기계적으로 대신하는 역할만 합니다.
반면 this와 that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마음의 손가락으로 '이것!', '저것!' 하고 콕 집어 가리키는 에너지가 살아있는 단어들입니다.


실전 독해에서 자꾸 막히는 문맥 파악 팁

수능, 토익, 혹은 원서 독해를 하다가 문장 중간에 뜬금없이 대문자로 시작하는 ThisThat을 만나면 갑자기 해석이 꼬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는 헤매지 말고 딱 이 법칙만 기억하세요.

독해 지문에서 문장 맨 앞에 나오는 This'방금 앞에서 설명한 문장 전체의 내용이나 원인'을 통째로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면 글의 결론부에서 That is why~ 같은 표현이 나온다면, '앞에서 말한 그런 이유 때문에 (결과적으로)~하다'라는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스무스한 독해가 가능해집니다.

Many people skip breakfast. This can lead to a lack of concentration during the day.
많은 사람들은 아침을 거른다. (앞 문장 전체를 가리키며) 이러한 현상은 낮 동안의 집중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글을 쓰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방금 주장한 문장을 독자에게 바짝 밀착시켜 강조하고 싶기 때문에 that이 아닌 this를 선택해 글을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영어식 사고방식을 장착하는 연습

영문법은 단순히 공식을 외우는 영역이 아닙니다. 원어민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거리감'을 나의 감각으로 동화시키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이제 미드를 보거나 영어 책을 읽을 때, 주인공들이 어떤 상황에서 손을 뻗치듯 this를 쓰고 어떤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서듯 that을 쓰는지 유심히 살펴보세요. 문법책 속 고정되어 있던 단어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자꾸 쓰게 되는 'myself', 사실은 뺄 때 더 자연스럽다?

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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